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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장례·장묘·추모

세계의 장례문화, 아프리카 국가

<가나 장례>

대서양에 면한 가나는 열대성 기후에 속하여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의 건기(乾期)와 4월부터 9월까지 우기(雨氣)로 나누어져 있다.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 이었다가 1957년에 아프리카의 식민지로서는 제일먼저 독립되어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있으며 주민은 아깡족이나 엘베족등 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유지하며 각각의 족장(族長)이 생활상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다.

 

부족마다 각기 다른 언어나 풍속을 가지고 있으나 공용어는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민의 반 이상이 기독교나 가톨릭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나 토착종교를 신봉하는 부족들도 있다.

 

현지인이 사망했을 경우 수도 아크라 등 도시에서는 사망계를 제출하여야 하나 지방에서는 반드시 의무화되어 있지 않는 곳도 있다. 거의가 토장(土葬)이며 화장설비는 없다. 토착주민 가운데 최대의 부족인 아깡족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근친자들에 의하여 수시작업이 거행된다. 근친자는 적어도 9일간은 상복을 입어야 하며 이 기간에는 단식까지 하고 있다.

 

이 나라는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들과는 달리 매장하는 날 장의를 거행하는 것이 아니고 부족들의 결정에 따라 매장 후 수일 혹은 수 주간 때로는 5년이 지난 뒤에도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적으로 월요일이나 목요일이 신(神)과의 화해가 되는 날로 관습화되어 있고 토요일에도 가능한 것으로 믿고 있다. 장의 당일의 아침에는 큰북이 울려 퍼지고 조가를 부른다.

 

모여 있는 여성들과 근친자들의 남성들이 부족들의 부락중심을 세 바퀴 돌고난 후 장의의 연회가 시작된다.

 

이웃마을로부터 회장자들이 속속 집결되고 유족들은 오렌지색깔의 점토(粘土)를 어깨나 가슴에 칠하며 미망인은 나뭇잎을 배꼽 밑에 붙여서 고인과의 혈연의 깊음을 표시한다. 그 이외의 관계자들 붉은색이나 검은색의 천을 몸에 걸치고 근친자들은 장의가 끝난 뒤에야 두발을 깎는데 머리카락을 매장지위에 얹어놓게 된다.

 

장의의 성대함이 죽은 이의 명성과 비례한다하여 사람들은 다투어 큰돈을 장의에 투자하고 돈 많은 사람들은 미화로 2만 불, 중류가정에서도 2천불(1998년도 현재)정도를 장의비용으로 쓰고 있다.

 

이에 따라 교회나 족장들의 비판소리가 높아져 이를 간소화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있다.

 

<말리 장례>

중앙 아프리카 내륙국인 말리는 니젤강 유역에 넓은 평원이 있고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빈곤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흑인의 반바라족으로 이슬람교나 토착종교를 신봉하고 있으나 생활수준이 낮고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文盲)으로 되어 있다. 말리공화국은 남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역의 요지이며 그중에서도 니젤 강변의 "도부크타"는 교역의 중심지로 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낙타를 이용한 장사꾼들이 소금이나 식료, 일용품 등을 북으로부터 실어오고 있다. 이들 장사꾼들의 종교가 이슬람교이기 때문에 토착민들도 일찍부터 이슬람교로 개종(改宗)되어 왔었다.

 

현지인이 사망했을 경우 그 지역 주민이 총 출동하여 성대한 장례를 거행한다. 유체는 사람들과 멀리 떨어진 장소에 매장시키고 정령숭배(精靈崇拜)가 성행되며 부족단위의 장례가 행하여진다.

 

장례는 수일간 계속되기도 하며 죽은 영혼에 대한 공포로 주술사(呪術師)에 의한 기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일부 소수민족인 "도알그"족은 푸른 색깔의 옷을 좋아하며, 사막의 용사임을 자랑하면서 여기저기로 이동생활을 하다가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사막에 묻어버리기도 한다. 또한 "드공"족들의 장례는 참석자들에게 장엄한 가면을 씌워 군무(群舞)를 추는 피로연까지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사후에 고인의 영혼과 활력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불안정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이를 고인의 집안에 그대로 묵혀둘 필요가 있어 부락의 남자들이 무장까지 하고 고인의 집 주위와 부락의 광장에서 모의 전투를 하기도 하며,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다시 성대하게 가면무도회를 거행하고 고인의 영혼과 활력을 다시 결합시켜 저승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살펴볼 것은 이들의 장례가 일반적으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공동체로부터 격리시켜 다른 세계로 보내는 제1단계의 장례와 죽은 이를 조령(祖靈)으로 전화(轉化)시켜 죽은 이와의 사회적 관계를 확립시키는 제2단계의 장례와 구별되어 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관습은 일본에서 근친자끼리의 밀장(密葬)을 거행한 얼마 후에 새삼스럽게 고별식(告別式)을 거행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브루키나파소 장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의 부르키나파소의 구르마(Gourma)족은 부르키나파소의 수도 와가두구(Ouagadougou)에서 남동쪽으로 5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대다수 부족민은 목화재배가 생계의 수단인 농민들이고 점술가, 대장장이, 직조공, 음유시인 등이 그 외의 직업군이다.

 

이 동네에서는 누군가가 죽으면 거의 2~3개월 동안 애도기간을 갖고 매일 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춤과, 노래, 무언극 등으로 장례의식을 치른다. 구르마족은 장례식에서 특별한 애도문을 읽는다. 죽은 자가 편안히 명부에 내려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에 애도문이자 동시에 일종의 주술이기도 하다.

 

-애도문

나 여기 밤이나 낮이나 무릎을 꿇네. 나 이제 주려고 하니 그것을 가져가소서. 밤이나 낮이나 걷거나 잠들 때, 나는 딱딱한 무릎을 꿇네. 나는 여기 발을 감춘 붉은 닭을 갖고 왔네. 나는 이제 동쪽으로, 서쪽으로, 내 오른 쪽으로, 내 왼쪽으로, 발을 감춘 닭을 주려고 하네. 악을 물리치는 신이여, 흉악한 마음을 물리쳐 숲 속으로 던지소서. 나를 위해 모든 악을 물리치소서.

 

물론 산 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지만 산 자는 죽은 자를 대신해서 이 말을 하는 것 같다. 망자는 간절히 자기를 낮추고 뭔가 기원을 한다. 너무 열심히 기원한 나머지 '딱딱하게' 굳어버린 무릎으로... 대상은 '악을 물리치는 신'이다.

 

망자는 신에게 '발을 감춘 붉은 닭'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 신이 희생제물을 받아들여 마지막으로 가는 마당에 이승에 사는 동안 가졌던 '흉악한 마음'을 꺼내 '숲'이라고 하는 (정화작용을 하는) 어딘가에 던져주길 바란다. 그리고 마치 처음 태어났을 때의 순수한 마음과 같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자 한다.

 

구르마족은 부모가 죽으면 애도기간 동안 자식들을 고아로 취급한다. 장성한 딸이 다른 마을에 출가하여 살고 있더라도 부모의 상을 당해 고향마을에 돌아오면 그녀는 고아가 된다. 그래서 고아가 된 딸을 위해 읊는 애도문은 다음과 같다.

 

-애도문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엄마는 죽었다. 목청 놓고 울어라.

엄마는 죽었다. 왜 울어야 하나,

엄마는 죽었다. 왜 울면 안 되나,

엄마는 죽었다.

 

딸은 울어서는 안 되고 또 목청 놓고 울어야 한다. 만약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당신들 하는 말은 문법도 이상하고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일종의 문학적인 허용입니까? 그렇다면 그 표현에 주석을 달고 자구의 반어적인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바보 취급을 당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애도문을 문학적인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 편한대로의 해석이고 그들에겐 그냥 일상생활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굳이 토를 단다면 고아인 딸은 엄마 없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되니까 약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고, 또 한 인간으로서 자기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질곡을 지고 힘겹게 살다가 세상을 뜬 엄마의 슬픔은 같이 나누어 가져가는 사람으로 짐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주요 애도사 중 한 대목은 맏딸의 몫이다. 고아가 된 딸은 일어서서, 이제 삶이 어디서부터 오느냐고 묻는다. 흙점을 치는 점술가의 몸짓을 따라서 딸은 말한다. “아, 그대 할례 받은 자여, 가루를 들어내게 보여주오. 그 고운 가루를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오.” 가족들이 애도사를 읊조릴 때 솥에 담긴 곡식 가루를 주걱으로 저어대는 시늉을 하는데 이 행위는 바로 망자를 대신해 가족에게 올 새 생명체의 탄생을 의미한다.

 

맏딸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이제 남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되새긴다. 훌륭한 예언의 비밀을 지켰는가, 힘찬 절구질의 비밀을 지켰는가, 맛있는 식사의 비밀, 편안한 거주의 비밀을 지켰는가, 좋은 취침의 비밀을 지켰는가?

 

구르마족 사람들은 비록 풍족하게 살아가진 못하지만 노동과 음악, 예언과 제의를 통하여 지구상의 그 어느 공동체보다 강한 결속력을 보여주며 영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케냐 장례>

루야족은 케냐의 남서부 지역에 사는 반투족 계열의 농경민이다. 이들의 장례식을 살펴보면, 먼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집에 모든 친척들이 모인다. 이 때 염소를 잡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데 이것은 죽을 이가 산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가 죽으면 주위 사람들은 통곡을 터뜨린다. 시체는 가죽에 싸여 집밖에서 하루, 또는 이틀 동안 안치된다. 죽은 사람의 지위가 높을 때는 표범 가죽이 사용되기도 한다. 친척이나 이웃들은 술과 음식을 가져와 먹으며 밤새워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죽은 이의 영을 즐겁게 하고 유족들을 위로한다.

 

매장을 위해 묘지로 가는 행렬에서 유족들은 죽은 자를 칭송하는 말을 하며 통곡을 계속한다. 매장은 보통 이른 오후에 행해지지만 특별한 사람의 경우에는 해질 녘에 행해진다. 시체는 서쪽을 향하게 하여 묻으며 아무것도 입히지 않은 나체로 묻는다. 이 나체로 묻는 것은 죽은 이의 내세에서의 탄생을 상징하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많은 다른 종족들이 도시에 살게 되었고, 아프리카인들의 많은 수가 전통종교를 포기하고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외래 종교를 받아 들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후에는 고향에 묻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이 도시에서 죽으면, 도시의 집에서는 간단한 의식을 치른 후 고향으로 돌아가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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