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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장례·장묘·추모

부부의 애틋한 사연이 있는 곳 ‘절부암’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속칭 ‘엉덕동산’에 있는 절부암(節婦岩)은 부부의 애틋한 사연이 가슴을 저리게 하는 곳이다.

 

용수리 서쪽 해안가 바위 틈으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박달목서,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팽나무 등 고목이 우거져 있고, 그 밑으로는 철썩이는 바닷물이 흐르는 용수리 바닷가인데 애달픈 사연이 있는 유서깊은 곳이다.

 

조선시대 말 용수 마을에서 열아홉 살 난 고씨 처녀가 강사철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남편 강 씨는 한경면 저지리 출신으로 조실부모하여 가난하게 살았고, 아내 고씨 역시 저지리 명이동에서 태어나 조실부모하여 가난했으나 절개가 곧고 성실하였다.

 

둘은 저지리에서 결혼했으나 가난하여 생계를 꾸리지 못하자 용수리로 이사와서 고기잡이 등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사철이 차귀섬에 대나무를 베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남편의 풍랑 소식을 들은 부인 고 씨는 남편의 시체나마 찾으려고 두이레 동안 밤낮으로 해안을 돌아다녔으나 찾지 못하자, 남편을 따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 용수리 바닷가 엉덕동산에 있는 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부인이 애타게 찾던 남편 시신은 다음날 부인이 숨져 있는 바닷가 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고 씨야말로 조아(曺娥)와 같다”며 두 시신을 거두어 당산봉 양지바른 쪽에 안장해 주었다.

 

조아는 조간(曺肝)의 딸로 조간이 143년(漢安 2) 강을 건너다가 급류에 빠져죽자 날마다 울면서 강을 헤매다 강물에 빠져죽었는데 5일만에 아버지 조간의 시체를 안고 물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러한 애달픈 사연이 관가에 전해지자 당시 판관 신재우는 관비(官費)로 직접 부부의 장례를 치러줌은 물론 고 씨가 목 맨 곳에 있는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 명명하고 마애명을 새기도록 했다.

 

또 제사 비용을 위한 제전(祭田)을 마련해 준 뒤 매년 두 부부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올리도록 했다.절부암의 글씨는 감동 김응하(監蕫 金膺河)가 쓰고, 동수 이팔근(洞首 李八根)이 새겼다.

 

지금도 용수리에서는 음력 3월 15일이면, 고씨의 넋을 기리는 절부암제를 열고, 당산봉 자락에 있는 고씨 부부의 묘도 성묘하고 있다.

 

절부암에서는 차귀도와 와도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그 광경이 절경이다. 저녁 노을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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