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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장례·장묘·추모

명절, 차례지내는 방법

설과 추석은 제사가 아니라 명절(名節)이다. 따라서 차례(茶禮)라고 한다. 즉 ‘설’은 새해를 맞이하는 기쁜 날,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선대 조상님들께는 감사의 제(祭)를 올리고 웃어른들께는 만수무강하심을 비는 세배(歲拜)와 만수금(萬壽金)을 올리고, 웃어른들은 후손들에게 “복을 받으라.”는 덕담(德談)올 내리고 세뱃돈(복)올 내리는 축복(祝福)의 날인 것이다.

 

따라서 제삿날과는 달리 제례(祭禮)법 같은 것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지방도 “현 선대 전조상님 신위(顯 先代 全祖上님 神位)”라고 한 장으로 쓰고. 설에는 떡국 9그릇. 추석에는 밥 9그릇과 송편 한 그릇에. 5육 5천 5채 8과의 진설(陳設)법을 기본으로 하되 기타 아무 것이라도 푸짐하게 차려놓고 조상님들에게는 제주만 단잔 가족들은 모두 첨작으로 술을 올리고 서로가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먹고 마시며 따뜻한 가족의 정을 나누며 온 가족이 조상님의 산소에 다녀오면 되는 것이다.

 

지방 쓰는 법
 
조상님들 한분 한분을 돌아가신 날밤에 따로따로 모실 때에는 각기 다르게 현 고조 학생부군 신위나, 顯 高祖 學生府君 神位라는 식으로 써야했지만, 설날과 추석 그리고 문중대제와 같이 전 조상님을 한 번에 모셔 놓고 지낼 때에는 모두 현 조상님 여러분신위 라고 쓰던가. 顯 先代 全祖上님 神位 라고 쓰면 되는 것이고, 부모님 제삿날에도 현 아버님 어머님 신위라고 쓰면 되는 것이다.

 

제사를 지낼 때 부모 한쪽이 생존해 있을 경우는 단독으로 지내니 지방에도 한 분만 쓴다. 그런데, 두 분 다 돌아가시면 같이 지내므로 지방에 부모를 같이 쓴다. 이때 오른쪽에 어머니의 신위를 쓰고 왼쪽에 아버지의 신위를 쓴다. (단, 야외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는 지방을 쓰지 않는다.)

 

 

 

지방에는 고인과 제사를 모시는 사람(제주, 祭主)의 관계를 적고, 고인의 직위를 적고, 고인의 이름을 적고, 마지막에 신위라고 적는다. 각각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고인과 제주의 관계
 
아버지는 ‘고(考)’, 어머니는 ‘비(妣)’, 조부모는 ‘조고(祖考)’, ‘조비(祖妣)’, 증조부모는 ‘증조고(曾祖考)’, ‘증조비(曾祖妣)’라 하여 앞에 현(顯)을 써서 ‘顯考(현고), 顯妣(현비), 顯祖考(현조고), 顯祖妣(현조비), 顯曾祖考(현증조고), 顯曾祖妣(현증조비)’라고 쓴다. 남편은 顯辟(현벽)이라고 쓰며, 아내는 ‘顯(현)’을 쓰지 않고 亡室(망실) 또는 故室(고실)이라 쓴다. 형은 顯兄(현형), 형수는 顯兄嫂(현형수), 동생은 亡弟(망제), 또는 故弟(고제), 자식은 亡子(망자), 또는 故子(고자)라고 쓴다.

 

2. 고인의 직위
 
전통적으로는 남자 조상이 벼슬을 한 경우에는 벼슬의 이름을 쓰고, 여자 조상은 남편의 급에 따라서 貞敬夫人(정경부인), 貞夫人(정부인), 淑夫人(숙부인) 등의 호칭을 나라에서 받았기 때문에 그 호칭을 썼다. 벼슬을 안 한 경우 남자 조상은 ‘學生(학생)’이라 쓰고, 그 부인은 ‘孺人(유인)’이라 썼다.
 
3. 고인의 이름
 
남자 조상의 경우 모두 ‘府君(부군)’이라고 쓰며, 여자조상이나 아내는 본관과 성씨(사례에서는 ‘김해 김씨’)를 쓴다. 자식이나 동생의 경우 이름(사례에서는 ‘길동’)을 쓴다.

 

 

 

 

다양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공직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지위를 얻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여자가 공직을 지낸 경우도 흔하다. 예를 들어 밀양 박씨 여자가 서기관을 지낸 경우 현대 사회상에 맞추어 직위에 ‘서기관’이라고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지방쓰기에 참고할 사항
 
지방에 고인 외에 제사를 받드는 봉사자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는 큰 아들인 경우 ‘孝子’, 작은 아들인 경우 ‘子’, 큰손자이면 ‘孝孫’, 증손자이면 ‘孝曾孫’, 남편이면 ‘夫’라 쓴다. 봉사자는 오른쪽으로부터 마지막 줄에 기록한다. 예를 들어 ‘孝子○○봉사’라고 쓴다. ○○는 이름이다. 최근에는 한글로 지방을 쓰는 집안도 늘어나고 있다. 이때는 ‘어머님 신위’, ‘아버님 신위’ 등으로 간단하게 쓸 수도 있고, 한자의 우리말 표기만 써서 ‘현고학생부군신위’와 같이 쓰기도 한다.

 

제사상 차리는 법

 

제사상 차리는 방법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원리를 알고 보면 간단한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음식을 차릴 때와 똑같은 것이다.
 
즉 주식(主食)을 제1 가까운 곳에 놓고 그 다음 고기를 놓고 그 다음 부침이를 놓고 그 다음 나물을 놓고 마지막에 과일을 놓는 것이다. 즉 음식 중 가장 중요한 밥 국과 같은 주식을 신위 쪽에서부터 제1 가까운 제1열에 차리고, 그 다음 중요한 고기를 제2열에 차리고, 그 다음 중요한 부침이를 제3열에 차리고 그 다음 중요한 나물을 제4열에 차리고, 가장 나중에 먹는 후식인 과일은 제5열에 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양(陽)적인 것은 동쪽, 음(陰)적인 것은 서쪽에 차리는 것이다.

 

-고서비동(考西妣東)
할아버지는 서쪽, 할머니는 동쪽으로(이것만은 음양이 반대임. 그 이유는 양은 동쪽으로 가려고하고, 음은 서쪽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모셔야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임)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은 팔딱팔딱 뛰니 양(동쪽), 소 돼지는 느리니 음(서쪽,)

 

-두동미서(頭東尾西)
머리는 양이라 동쪽, 꼬리는 음이라 서쪽,

 

-배남복북(背南腹北)
둥은 양이라 남쪽, 배는 음이라 북쪽(배가 신위 쪽으로)

 

-생동숙서(生東熟西)
생(生)것은 양이라 동쪽, 익(熟)은 것은 음이라 서쪽,

 

-좌포우혜(左脯右醯)
포(脯)는 죽은 것이니 음(서쪽), 식혜는 살아있으니 양(동쪽),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색은 양이라 동쪽, 흰색은 음이라 서쪽,

 

-조율이시(棗栗梨柿)
씨의 수대로 놓으라는 것 

 

 

 

 

 

그러나 밥(메)과 국(탕)의 경우는 살아계실 때와 똑같이 “동반서갱(東飯西羹)으로 차려라” 라는 책과 죽은 사람은 반대이니 “서반동쟁(西飯東羹)으로 차려라” 라는 책이 있어 헷갈린다. 그러나 죽은 후에도 살아 계실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계신다는 점에서 동반서갱(東飯西羹)이 맞는 것이다. 즉 죽은 후에도 거꾸로 걸어 다니거나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1열에는 식사 중에 가장 중요한 주식(主食)인 밥(메)과 국(탕) 그리고 술과 물을 차리는 것이며 떡과 국수도 놓는다. 물론 수저도 놓는다.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

 

2열에는 주식 다음으로 중요한 고기(肉)를 차린다. (이 2열부터는 산야가해(山野家海)의 순서대로 차린다. 즉 山짐승인 소고기산적에, 들(野)짐승인 돼지고기수육에, 집(家)에서 기르는 닭찜에, 집에서 가공한 포에, 바다(海)에서 생산되는 조기를 차린다. (옛날 가난할 때는 덩어리 고기를 살 형편이 못 되어 포를 고기반열인 첫 번째에 놓거나, 고기를 조금 사다 국을 끓이고(육탕=肉湯), 채소의 국(채탕=菜湯)과 생선의 국(어탕=魚湯) 즉 3탕을 끓여 차렸으나 지금은 덩어리 고기를 차림으로서 3탕은 차리지 않는다.)

 

3열에는 고기 다음으로 중요한 전(煎) 즉 부침이를 차린다. 역시 산야가해(山野家海)의 순서대로 소나 돼지의 고기가 들어간 동그랑땡(山野)에, 배추를 넣은 부침이(野)에, 간장에, 두부부침(家)에, 바다(海)생선의 포를 넣은 전을 차린다. 

 

4열에는 부침이 다음으로 중요한 나물을 차린다. 역시 산야가해의 순서에 따라 산(山)고사리에, 들(野)도라지에, 집(家)에서 기른 숙주나물에, 집에서 담근 물김치에, 식혜에, 바다(海)나물인 김을 차린다.

 

5열에는 식사 후의 후식인 과일(果實)을 차린다. 여기에서는 산야가해의 순서가 아니라 조율이시(棗栗梨柿)나 홍동백서(紅東白西)로 차린다.

 

홍동백서(紅東白西)는 동쪽은 양이고 서쪽은 음이니 붉은 색인 과일은 동쪽으로, 백색과일은 서쪽으로 놓으라는 것이며, 조율이시(棗栗梨柿)는 대추는 씨가 하나라 임금을 뜻하니 처음에 놓고, 밤은 한 송이에 3개가 들어있어 3정승을 뜻하니 2번째 놓고, 배, 사과는 씨가 6개라 6조판서(判書)를 뜻하니 3, 4번째 놓고, 감은 씨가 8개라 8도관찰사(觀察使)를 뜻하니 5번째 놓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씨가 많은 것, 즉 백성을 뜻하는 과일로서 참외, 수박, 포도 같은 것을 놓으면 되는 것이며, 수입한 과일도 상관없는 것이다. 그리고 재래식 색동사탕, 약과, 산자 같은 한과도 좋은 것이다.

 

이상과 같이 밥과 국(탕) 술에 5육(肉) 5전(煎) 5채(菜) 8과(果)를 차리면 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차렬 수 없을 때에는 3육, 3전, 3채, 5과를 기본으로 하고, 더 차리고 싶으면 더 차리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큰제사(門中大祭)의 겨우, 그 많은 조상님들의 밥(메)을 어떻게 차리는가라는 것인데, 이것도 “아주아주 많은” 이라는 뜻이 담긴 9그릇만 차리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설. 추석에도 9그릇만 차리면 되는 것이며. 산적도 9장, 부침이도 9장, 과일 같은 것도 9개씩만 차리면 되는 것이다. 물론 여러분을 모실 때는 그 수만큼 밥과 국 그리고 술잔을 차려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많아도 9그릇 씩 이상은 차리지 않는다.)

 

그리고 오신채(五辛菜)라 해서 고추, 파, 마늘, 생강, 식초 같은 것을 쓰지 말라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오신채를 금하는 것은 “불교에서 스님들이 이것을 먹으면 흥분되고 음탕한 생각을 한다하여 금하는 것이지,”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제사에서는  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3가지 이상이 되었을 때는 그대로 더 차리면 되는 것이지 꼭 훌 수로만 차리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애당초부터 3가지라는 뜻에는 "적어도 3가지는 차려야 한다."라는 뜻이지 그 이상은 차리지 말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중국(中國)요리나 서양(西洋)요리, 양주(洋酒)같은 것이나 현찰(現札) 같은 것도 좋은 것이다. 요즘 돌아가신 분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다며, 붉은 김치를 놓기도 하고 개고기를 놓기도 하는데,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이다.

 

제사 지내는 날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날 밤에 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전날 밤 12시에 지낸다.”라고하면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알고 보면 간단하다. 할아버지가 3월 5일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3월 5일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그 전날 밤 12시(子時)부터가 아닌가, 즉 하루 전날 지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날의 맨 첫 시간에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가 바쁘다 보니 밤 12시에 지내고 돌아가면 피곤하다하여 1시간 앞당겨 밤11시(이때부터 자시(子時)임으로)지내거나 돌아가신 날 즉 3월 5일 저녁 8시쯤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또 요즘은 돌아가신 날마다 지내자니 설과 추석을 합하여 1년에 10번도 더 지내는 집도 있어 생활상 어려움이 많다하여 부모님 제사만을 돌아가신 날 밤에 집에서 지내고 그 외는 모두 오곡백과(五穀百果)가 풍성한 음력10월 첫 일요일이나 개천절에 한번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즉 큰제사(門中大祭)나 묘제(墓祭)로 지내는 것이다.

 

큰제사로 한번에 지내니까 언뜻 생각하기에 제사를 빼먹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년에 한번씩 따로따로 모시던 것을 한번에 모셔 놓고 지내는 것뿐이지 빼먹는 것은 아니다.” 조상님들께서도 외롭게 따로따로 오시는 것 보다는 좋고 후손들 역시 1년에 한번이라 모두가 참석해서 좋은 것이다. 그리고 후손들도 큰제사가 없으면 형제나 일가친척이 각자 제사를 지내게 되어 서로가 멀어질 수밖에 없지만 큰제사로 지내게 되면 모두가 모이게 되어 서로 화목하게 되고 또한 돕게 되어 좋은 것이다.
 
즉 시제(時祭)는 고조까지의 제사를 집에서 지내고 그 윗분들의 제사는 산소나 사당에 가서 지내는 것이지만 큰제사는 부모님 제사만을 집에서 지내고 그 윗분들의 제사는 모두 산소(묘제=墓祭)나 사당에서 지내는 것이다. 그리고 큰제사는 집에서 지내던 제사를 산소나 사당에서 지낼 뿐이라는 점에서 시제와는 다른 것이다. 시제는 “이번에는 몇 대손까지” “이번에는 몇 대손까지”라며 사람을 뺏다 넣었다 하고 그때마다 제물도 바꾸는 식의 복잡한 격식을 따르지만 큰제사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집에서 밤 제사를 지낼 때와 같이 한번 차린 상에 참석자 모두가 함께 절을 올리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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