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룹명/장례·장묘·추모

6.25 국군 전사자(호국의 영웅) 귀환행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 17일, 1950년 8월 수도사단 17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故 조영환 하사(1928년생)의 딸 조규순(70세, 서울 은평구)씨 집을 방문해 전사자 신원확인 통지서와 국방부장관 위로패, 유해수습시 관을 덮은 태극기, 함께 발굴된 유품 등을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가졌다.

 

이번 6.25전사자 신원확인은 2000년 유해발굴 첫 삽을 뜬 이후 118번째이며, 국유단 창설 1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처음으로 갖는 행사이다.

 

故 조 하사는 1928년 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월암리(현재 지명 : 경기도 의왕시 월암동)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고향에 계신 어른들로 부터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순둥이 효자로 불리는 청년이었다. 1946년 결혼 후 2년 뒤 딸을 낳아 행복하게 살던 중 1949년 1월 3일 22세의 젊은 나이로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일념 하나로 육군에 자원입대한 것으로 확인 되었다.

 

故 조 하사는 1949년 1월 육군직할 제17연대로 배치되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초기인 6월 25일부터 26일까지 옹진지구 전투에 참가했으며, 7월 오산전투와 진천-청주 전투, 상주 화령장 전투, 함양-거창 전투에 이어 8월초 낙동강 방어 전투까지 참전하게 된다.

 

낙동강 전선에서는 수도사단에 배속된 17연대 소속으로 북한군 12사단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기계-안강(포항) 일대에서 방어전투에 참가했으며, 1950년 8월 13일~30일 까지 북한군 12사단과 치열한 교전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故 조 하사의 유해는 2009년 3월 경상북도 포항시 기북면 대곡리 무명 380고지에서 야전삽, 수통 등의 유품과 함께 발굴됐다.

 

 

 

국유단은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법의인류학적 감식 및 이미 확보되어 있는 유가족들의 유전자(DNA) 비교 분석을 통해 친족관계를 확인하는 절차에 돌입했지만 확보된 유가족 유전자와 일치하는 데이터가 없었다.

 

이에 국유단 유가족관리과에서는 전사자의 병적대장 기록을 근거로 제적등본을 확보하고 전사자의 본적인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유가족을 찾기 위해 탐문활동을 진행 하였다. 다행히 경기도 의왕시에 전사자의 남동생 조태환(63세)씨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남동생인 조태환씨에게 전사자의 형제 관계를 확인한 결과 서울에 전사자의 딸, 누나, 남동생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확인하고, 당시 파악된 유가족 4명(남동생 2, 여동생, 1, 딸 1명)에 대해서 유전자(DNA) 시료를 채취해 1차 분석한 결과 유해와 유가족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에 따라 전사자 유가족 여부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딸 조규순(70세)씨와 남동생 조태환(63세)씨의 유전자(DNA) 시료채취를 추가 의뢰해 2차 분석한 결과 작년 12월 22일 조규순씨와 부녀 관계로 확인 되었다.

 

드디어 유가족 찾기 탐문관들의 끈질긴 추적을 통해 2009년 경북 포항 대곡리에서 발굴된 故 조영환 하사의 유해로 신원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유가족 시료채취를 담당했던 최원정 탐문관(45세)은 “故 조영환 하사님의 경우 발굴 현장에서 인식표를 찾지 못했고, 다른 유품들에도 신원확인이 가능한 단서가 없었다. 내 가족을 찾는다는 심정으로 전사자 병적 및 보훈처 자료 등을 분석하여 유가족을 찾기 위한 탐문활동을 하다가 다행히 전사자의 본적지 인근에 유가족이 생존하고 계셔서 유전자(DNA) 시료를 채취할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전사자의 유가족분들이 생존해 계셨기 때문에 신원확인이 빨리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유가족 한 분의 시료채취는 전사자 한 분의 신원확인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연로하신 유가족분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유가족 유전자(DNA) 시료채취에 매진하여 호국의 영웅들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가족들의 품으로 모시고자 디딤돌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동생 조태환(63세)씨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때 형님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아버님은 형님이 소속된 17연대가 수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을 수소문해 돌아 다니셨으며, 어머님은 4년 전에 10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지만 매일 형님에 대한 꿈을 꾸셨다고 말씀하셨다. 기존 거주 지역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집이 헐리고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뒤로 어머니의 꿈에 아들이 서울로 올라왔는데 집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형님이 집 근처에 올 수도 있으니 밖에서도 집 안을 훤히 볼 수 있도록 대문과 창문을 항상 열어 놓으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한편, 이번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 참석하는 전사자의 딸 조규순(70세)씨는 “할머니가 간직하고 계셨던 아버지 사진 1장이 유일한 아버님의 유품이다. 아버님이 입대할 당시 내 나이는 2살 이였기 때문에 사진 1장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아버님의 무사귀환을 빌던 분이셨는데, 조금만 일찍 아버님의 유해를 찾았더라면 할머니가 편안히 하늘나라로 떠나셨을 텐데… 손꼽아 기다렸던 아버님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신 국방부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소감을 밝혔다.

 

신원이 확인된 故 조 하사의 유해는 유가족들과 협의를 거쳐 추후 국립현충원에 안장 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118명의 호국용사의 경우 유품(인식표, 도장, 명찰, 사진 등)과 유전자 검사를 통한 유가족 친족관계 확인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약 3만 6천여 명으로 미수습된 유해 12만 3천여 위에 비해 많이 부족한 실정이며, 6.25전쟁 세대와 유가족의 고령화 및 국토개발에 따른 지형변화 등도 유해발굴사업을 추진하는데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대령 이학기)은 “국군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대한민국을 목숨바쳐 지켜낸 호국의 영웅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을 이행하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계신 전사자 분들이 아직도 12만 3천여 위나 계신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영웅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에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시사상조신문 www.sisasangj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