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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대법, 유책배우자 이런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

 

 

 

 

악의적인 유책배우자, 파탄주의 도입해도 이혼하기 어렵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지난 15일 A씨의 상고를 기각했다(대법원 2013므 568 판결). 혼인파탄에 책임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는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다수의견이었다.

 

15년 전 집을 나가 혼외자를 낳은 A씨가 아내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한 사건의 제1심과 항소심은 종전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혼인 파탄에 책임있는 A씨는 재판상 이혼청구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A씨가 상고했다. 대법원은 A씨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판례변경 여부를 검토하기 위하여 지난 6월 공개변론까지 열었다.

 

대법원은 1965년 혼인파탄에 책임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고(대법원 1965.9.21. 선고 65므37 판결), 우리 민법이 재판상 이혼사유와 관련하여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고 해석해 왔다.

 

이와 같은 유책주의는 50년 동안 기본 원칙은 유지되었으나 예외가 확대되어 왔다. 실제 하급심과 대법원에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한 사례도 매우 많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즉, 대법원은 상대방 배우자가 오로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적으로는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계속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비록 혼인의 파탄에 관하여 전적인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라 할지라도 이를 인용해 왔다(대법원 1987.4.14. 선고 86므28 판결, 대법원 1993. 11. 26. 선고 91므177, 184 판결, 대법원 1997. 5.16. 선고 97므155 판결,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므2130 판결 등).

 

대법원은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전면적인 파탄주의의 도입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취지로 판시했다.

이혼 전문 엄경천변호사(법무법인 가족)는 “이번 판결이 그동안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던 경우까지 막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동안 대법원 판례를 통하여 인정되어 오던 예외를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명확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유책주의의 일부 완화 내지 제한적 파탄주의의 가능성을 확인한 판결로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대법원 선고에 나타난 대법관들의 입장은 팽팽하게 나뉘었다.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을 포함한 6명의 대법관은 파탄주의 입장으로 종전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었고, 양승태 대법원장과 6명의 대법관 등 7명은 유책주의 입장에서 종전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드러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인 조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의견은 “①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오로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적으로는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계속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는 물론, ②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③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이른바 유책성 풍화론)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는데, 이는 종전에 하급심과 대법원 판결을 통하여 유책주의의 예외로 허용되어 온 사례다.

 

흔히 이혼소송에서 피고는 원고가 유책배우자이기 때문에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엄경천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혼청구를 배척하는 유책배우자는 단순히 잘못이 있는 배우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혼인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로서 정조의무와 부양의무 등 혼인의 본질에서 요구되는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경우만 해당된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기 전 서울가정법원은 유책배우자 B씨가 제기한 이혼사건에서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B씨의 이혼청구를 배척했다.

 

두 자녀를 낳고 시아버지가 마련해준 아파트에 살던 아내를 두고 가출한 B씨는 다른 여성과 만나 동거하면서 아이 둘을 낳고 살다가 가출 22년 만에 아내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이혼소송 진행 중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상속권을 행사해 아내와 자녀들이 살던 아버지 명의의 아파트를 자신과 동생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고 경매에 넘겼다. B씨는 아버지가 자신의 명의로 아내에게 사준 오래된 자동차까지 견인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유책주의)과 반대의견(파탄주의)이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다수의견도 예외를 인정하고 있고, 반대의견도 이혼을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이른바 가혹조항)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의견(파탄주의)은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제6호 이혼사유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지만, ㉠이혼으로 인하여 파탄에 책임 없는 상대방 배우자가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히 가혹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 ㉡부모의 이혼이 자녀의 양육, 교육, 복지를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혼인기간 중에 고의로 장기간 부양의무 및 양육의무를 저버린 경우, ㉣이혼에 대비하여 책임재산을 은닉하는 등 재산분할, 위자료의 이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여 상대방 배우자를 곤궁에 빠뜨리는 경우 등과 같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한다면 상대방 배우자나 자녀의 이익을 심각하게 해치는 결과를 가져와 정의?공평의 관념에 현저히 반하는 객관적인 사정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제6호 이혼사유가 있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앞서 본 B씨는 파탄주의(대법원 전원합의체 반대의견)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유책주의가 유지된다고 하여 무조건 이혼이 어려운 것은 아니고, 파탄주의로 전환된다고 해서 이혼이 무조건 쉬워지는 것도 아니다.

 

혼인의 본질에 비추어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아버지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배우자는 어느 경우에도 상대방 배우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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