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뉴시스·연합뉴스 등 가장 많아…‘속보’ 붙인 보도까지
지난 4월 12일 서울남부지검에서 초임검사 A씨가 숨졌다. 검찰은 사망 경위 파악 등을 위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현재까지 사망 원인은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언론은 이번에도 해당 소식을 전하며 스스로 마련한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지키지 않았다. 사건 당일 하루에만 윤리강령을 어긴 100개에 이르는 기사들이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4월 12일 오후 6시까지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어긴 기사를 전수분석했다. 그 결과 64개 언론사가 96개 기사에서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어겼다고 밝혔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언론은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 자살까지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64개 언론사는 96개 기사에서 자살 방법을 암시하는 ‘투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기사 제목에선 ‘극단적 선택’이라며 윤리강령을 지켰지만, 본문에서는 ‘투신’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윤리강령을 어긴 기사도 적지 않았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어기며 관련 기사를 2건 이상 낸 언론사는 14개나 되었는데요. 뉴스1이 13건으로 가장 많았고, 뉴시스가 5건으로 뒤를 이었다. 연합뉴스‧서울신문‧이데일리‧한국경제는 각각 3건, 조선비즈 등 8개사는 각각 2건을 보도했다.
관련 기사를 2건 이상 내놓은 언론사는 앞선 기사에 이어 다음 기사를 낼 때 윤리강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정정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속보’로 후속을 전하며 윤리강령을 어기는 행태만 반복했다. 특히 뉴스1과 뉴시스는 각각 10건과 3건의 사진기사를 내놓았다. 그조차 A씨가 발견된 서울남부지검 외관과 주변풍경을 전달한 사진에 불과하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언론은 자살 사건의 보도 여부, 편집, 보도방식과 보도 내용은 유일하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입각해서 결정하며,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 사건을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1과 뉴시스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아닌데 속보 경쟁하듯 반복하여 사진기사를 올리며 윤리강령 위반을 반복했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뉴스 “‘쿵’ 소리 듣고 온 검찰에 의해 발견”
심지어 파이낸셜뉴스는 <서울남부지검 청사서 초임 검사 투신 사망‥검, 진상조사 착수(종합)>(노유정 김해솔 기자)에서 “사건 발생 직후 ‘쿵’ 소리를 듣고 쫓아온 검찰 관계자에 의해 발견됐다”며 A씨가 발견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기도 했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자살 등과 같이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와 그러한 묘사가 사건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경우는 예외”라며 예외 규정을 뒀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검찰이 이제 막 진상 파악을 위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로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사에서 ‘투신’, ‘쿵’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묘사하는 것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아니다.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언론은 자살 동기에 대한 단편적이고 단정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이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언론은 관련 소식을 전하며 이마저도 어겼다.
한국일보는 <서울남부지검서 30대 초임검사 투신 사망>(원다라 기자)에서 “(A씨가) 올해 초 서울남부지검으로 부임해 형사1부에서 근무해왔다”며 “서울남부지검 형사부에선 2016년 당시 임용 2년 차였던 김홍영 검사가 상사의 상습적 폭언·폭행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진상 파악에 나선 건 사건이 발생한 직후다. 밝혀진 것이 없는데도, 한국일보는 단편적 사실 일부와 김홍영 검사 사례를 언급하며 A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단정적으로 판단해 보도한 것이다. 한국일보를 비롯해 연합뉴스, 뉴스1, 조선비즈, 서울신문, 이데일리, 디지털타임스, 문화일보, MBC 등 총 11개 언론사가 이런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자살보도 윤리강령 18년, 여전히 지켜지지 않아
자살보도 윤리강령은 2004년 10월 5일 발표됐습니다. 그러나 윤리강령이 마련된 지 18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윤리강령을 어긴 96개 기사 중 44개 기사는 말미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포함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누군가의 극단적 선택을 다루는 기사를 아예 전하지 않을 수는 없다. 언론이 극단적 선택을 막자며 상담 전화나 어플리케이션을 안내하는 것에 앞서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며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언론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 한국기자협회가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함께 제정하고 발표한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지키는 일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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