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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장례·장묘·추모

북한의 장례문화

북한의 장례는 거의가 3일장이다. 혁명 1세대 등의 고위 간부 사망 시에 치러지는 국장(國葬)도 거의 마찬가지다. 92년 2월에 사망한 인민 무력부장 오진우(吳振宇)외 서철(徐哲)등이 5일장으로 치러졌고 김일성의 경우는 12일장으로 치러진 예외의 기록도 있었다.

 

북한에는 장의사가 없으며, 관은 가정에서 직접 만들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만들어 준다. 시신을 입관 할 때에는 얼굴에 화장을 하며 종이나 헌옷가지로 관을 보공(補空)한다. 빈소도 각 가정에 마련하는 경우가 있으며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향도 피운다.

 

북한에서는 베 감투(두건)와 베옷(상복)이 사라진지 오래다. 소리 내어 곡도 못한다. 70년대 들어서 김일성이 복고주의(復古主義)와 봉건유교사상을 비판함에 따라 전통적인 장례풍습이 없어졌으며 팔에 검은 완장을 두르는 정도이나 그것마저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때문에 젊은 층에서는 장례의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문상객은 빈소 앞에서 분향을 하고 절을 한 뒤 술을 올린다. 그 후 상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 이들은 주패(트럼프)놀이를 하면서 밤을 함께 새우며 상주를 위로해주고 있다. 술을 비롯한 접대용 음식은 식료 상점에서 국정 가격으로 구입한다. 북한에서는 결혼과 장례를 ‘큰일’로 간주해 국가가 반드시 필요한 음식을 제공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식료품상점에서 구입하는 양이 적어서 애를 먹고 있다. 조의금은 각자가 내기도 하고 직장에서 단체로 추렴하기도 한다.

 

사망신고는 사회안전부(경찰)에 한다. 매장은 해당지역 행정경제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묘 자리는 여기에서 지정해 주고 있다.

 

평양에는 상원군, 중화군 등에 공동묘지가 많으며 발인은 대개 아침 10시경에 하고 있다. 영구차가 별도로 없으며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 버스를, 지방에서는 화물차를 이용한다.

 

차량은 대부분 직장에서 알선해 준다. 무덤은 가족, 친지, 직장 동료들이 매장 하루 전에 미리 파놓는다. 상석과 비석도 세우나 대개 나무로 만들어 쓰고 있으며 고위간부들은 대리석으로 만들어 세운다. 화강암 광산에 상석과 비석만 전문으로 만드는 직장이 있다.

 

탈상에 대한 의식은 별도로 없고 대부분 사망이후 첫 생일날에나 1주기에 제사를 지내고 그 이후에는 한식과 추석 명절 때만 제사가 있고 기제사도 거의 지내지 않는다. 각 가정에서는 고인의 사진을 벽에 걸 수 있지만 반드시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보다 아래에 걸어야 한다. 부모사망의 경우 지역에 따라 2-4일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

 

최근에는 매장보다 화장으로의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화장의 경우 각 직장이나 마을에 비치중인 관에 시신을 담아 ‘화장장’에서는 시신만을 끌어내어 화장을 하고 관은 다시 가지고 가서 다음에 또 사용하기도 한다.

 

<시사상조신문 www.sisasangj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