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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위대한 똥말 ‘차밍걸’의 아름다운 101번째 도전

 

 

“성적은 꼴찌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우리들에게 챔피언입니다”

 

뛰어도 뛰어도 1등을 하지 못한 말. 100차례 경주에 출전해 한 번도 우승을 못한 말. 한국경마 최다연패 기록을 세운 8세 암말 차밍걸이 오는 9월말 101번째 경기를 마지막으로 영예로운 은퇴식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한국경마 연패기록과 현역 경주마 최다출전기록을 갈아 치우며 화제를 모았던 '차밍걸'은 지난 9월 1일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7경주(국4 1800M)에서 다시 한 번 우승에 실패하며 100전 100패 기록에 올랐다. 2008년 데뷔 이후 한 경기에서도 우승을 기록하지 못한 '차밍걸'은 마지막 경기에서도 우승은 사실상 불가능해 101연패라는 기록을 남길 게 확실시 된다.

 

차밍걸의주인인 변영남(70) 마주. 차밍걸은 아직 경주마로 활동할 수 있는 여력은 남아있지만, 8세의 고령인데다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기 위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마는 순위를 다투는 스포츠다. 1등에게는 항상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만 그 이하는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경마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대략 10% 내외. 모든 경주에서 1등은 한 마리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1등을 못하게 된다. 결국 1등을 하지 못하는 마필이 필수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밍걸은 마주가 빚 대신 떠안은 말이다. 체구도 작다. 출생도, 스펙도 보잘것없다. 하지만, 차밀걸이 부진한 성적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말보다 빠른 회복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보통 경주마는 1개월 보름 만에 한번 정도 출전하지만, 차밍걸은 1개월에 두 번 경주에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경주마보다 1.5∼2배 정도 더 일을 많이 하는 셈이다. 남들 8시간 일할 때 12시간이나 16시간 일해서 먹고사는 서민들의 삶과 닮은꼴이다.

 

차밍걸을 데리고 있는 변영남(70) 마주는 "뒷심이 부족해 우승은 못하지만, 마지막 결승 주로에서 온힘을 다해 한번은 치고 나간다. 1등을 못해도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운이 솟는 기분이라며 차밍걸을 응원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진작 사라졌어야 할 능력없는 똥말'이라는 혹평과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위대한 똥말'이라는 찬사를 차밍걸은 함께 받았다. 그는 "잔병치례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차밍걸의 101번째 경주는 차밍걸에게 개근상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은퇴 이후 진로도 정해졌다. 전국의 여러 경주마 목장에서 차밍걸을 씨암말로 데려가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변영남 마주는 고민 끝에 최선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경기도 화성시 궁평목장에서 선수용 승용마로 데뷔시키기로 결정했다.

 

류태정(46) 궁평목장 대표는 "경주마로 능력은 부족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밍걸이 전국체전 등 승마 대회에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8세는 경주마로는 노쇠하지만 승용마로는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나이다.

 

변영남(70) 마주는 "나중에 사람들이 매번 패하던 그 말이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떳떳하게 답하고 싶었다. 육군사관학교에 군용마로 기증할지, 장애인 치료를 위해 재활승마 단체에 기증할지 고민했지만 지금껏 열심히 뛰었으니 승마용 말로 도전하면서 여생을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목장으로 보낸다"고 했다. 앞만 보고 달렸던 경주마에서, 마장마술·장애물 비월 등을 하는 승용마로 제2의 도전에 나서는 셈이다.

 

1등만이 인정받고, 1등만이 가치 있고, 1등이 아닌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풍조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숫자로 매길 수 없다. 세상에는 1등보다 더 아름다운 꼴찌가 존재하는 법. 포기는 없다는 교훈을 경주마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생에서 최고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시사상조 www.sisasangj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