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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壽衣)의 유래

우리는 수의(壽衣)가 아닌 수의(囚衣)를 입고 있다.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짓밟힌 역사의 흔적들 가운데 아주 은밀하게 숨어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잔재가 하나 있다.

 

장례에서 죽은 자를 염습할 때 입히는 옷, 삼베로 만든 수의(壽衣)다.

 

원래 삼베는 수의(壽衣)는 직물이 아니라 죄인의 옷을 만들 때 사용되던 직물이었다.

 

이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가누지 못하고 당시 서민들이 즐겨 입는 삼베옷을 입은 데서 유래한다.

 

죄를 지었거나 상을 당했을 때는 삼베옷을 입고 참회하거나 상을 치르는 풍습이 이때 시작됐다고 한다.

 

삼베는 여름철 평상복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추운 겨울 부모를 잃은 죄인이 참회의 옷으로 사용하기에도 적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죄수복(囚衣)이나 상복(喪服) 등의 흉복(凶服)으로 사용되었던 삼베가 일제 시대에 와서 수의(壽衣)의 소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전통적인 수의(壽衣)는 '생전에 입던 옷 가운데서 가장 좋은 옷'이었다.

 

양반들은 관복을 선비들은 심의(深衣)를 서민들은 원삼(圓衫) 등의 혼례복을 수의로 사용했다.

 

또한 수의(壽衣)라는 용어가 생긴 것도 일제 시대였다. 이전까지는 수의(壽衣)라 하지 않고 '습의'(襲衣)와 '염의'(殮衣)로 구분지어 그 의미와 역할을 분명히 했다.

 

습의는 시신에 입히는 평상복을 말하고 염의는 그 위에 시신을 덮거나 감싸는 여러 벌의 옷을 의미한다.

 

이 중 염의는 임금이 하사한 옷이나 귀인이 선물한 옷으로 그 모양과 자태가 다양하고 화려했다.

 

그러던 것이 일제의 잔혹한 경제수탈로 습의와 염의를 수의(壽衣) 하나로 간소화했고, 흉복(凶服)의 소재로 사용되던 삼베를 수의(壽衣)의 소재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지켜온 장례 예법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것이며, 산 자와 죽은 자를 모두 죄인으로 취급받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전통 수의는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

 

따라서 지금 널리 사용되고 있는 삼베 수의는 우리 전통의 수의가 아니라 일제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사용된 수의다.

 

삼베 수의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삼베의 놀라운 효능과 기능이다. 삼베에는 강력한 항균기능과 흡수력이 있어 삼베로 수의로 만들어 입히고 매장하면 땅속에서도 썩지 않고 그대로 건조, 밀착되어 누런 황골(黃骨)이 된다는 것이다.

 

황골은 음택풍수에서 말하는 최상의 발복(發福) 원인이 된다.

 

사실 조선시대 신앙으로까지 추앙받았던 풍수는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이상하게 변질됐다.

 

국가 공인 지관(地官)이라는 풍수가의 활동이 중단되자 짝퉁 풍수가가 등장하고 이들이 장례풍습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명당이라는 미명 아래 산수 좋은 곳은 모조리 묘 자리로 만들어 버렸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묘가 파헤쳐지고 이장되는 수난을 당한다.

 

또한 이들의 폭넓은 활동으로 금양임야(禁養林野, 분묘에 따른 토지 보존)라는 제도와 분묘기지권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스꽝스럽게도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증명하고 수익을 증대시키는 데 삼베 수의를 활용했다.

 

여기에는 1976년 발효된 대마관리법도 한몫했는데, 그 희소성으로 인해 삼베의 가치는 급상승한다.

 

어찌됐건 일제와 짝퉁 풍수업자로 인해 수의(囚衣)로나 사용되던 삼베가 수의(壽衣)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희한한 가치를 인정받아 오늘날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명품 수의로 인정받게 되었다. (출처, 상장례나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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