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성(姓)과 본을 결정할 때 아버지 쪽을 따르게 한 현행 민법 규정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이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를 지난 14일 열린 ‘양성평등시대, 자녀의 성 결정에 부부평등은 있는가’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발표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정미화 변호사와 신옥주 전북대 교수가 주제 발표를 했고, 이현곤 서울가정법원 판사와 현소혜 서강대 교수 등이 토론에 나섰다.
현행 민법은 ‘자(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781조1항)고 규정하고 있으나 부모가 혼인신고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 등에 한해 예외를 두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최근 한 달간 국민 6천87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1.9%(4천252명)가 ‘부성원칙주의’가 불합리하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성별에 따라 부성원칙주의에 대한 입장 차이를 보여 응답자 중 남성은 46.9%(1천386명), 여성은 73.2%(2천863명)가 각각 불합리하다고 답했다. 연령에 따라서는 10대가 76.7%로 가장 비율이 높았으며 20대(72.5%) 30대(66.1%) 40대(59.8%) 50대(49.5%) 60대 이상(33.5%) 등의 순이었다.
부성원칙주의의 대안으로는 ‘자녀가 출생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 중에서 부모가 협의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응답(3천261명)이 가장 많았다.
이와 관련하여 가족법 전문 엄경천변호사(법무법인 가족)는 부성원칙주의를 남녀평등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어머니는 생물학적인 개념이지만 아버지는 법률적 개념이라고 본다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자녀는 출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에 의하여 친자관계가 인정된다. 그러나, 가족법에서 아버지와 자녀는 법률상 친자관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비록 생물학적으로 부자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부자관계가 되지 못하면 가족법상 부자관계(친족)로서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녀를 돌보게 된다. 그런데, 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아버지라는 것이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 명확한 것은 아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는 것은 자녀에게 성을 물려준 남자가 아버지라는 것을 선포하고 자녀의 양육책임을 어머니와 분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따른다는 것은 보살핌을 주는 어버이로서 아버지를 확정하는 절차로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가 아버지의 성을 따랐던 것이다.
자녀의 성을 아버지 또는 어머니 가운데 누구를 따를 것인가의 문제는 남녀평등의 문제만 개입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혼이 늘어나고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재혼한 남편과 전 남편 사이에 태아난 자녀의 성이 달라 재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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