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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장례·장묘·추모

아름다운 장례봉사 [나눔과 나눔 장례지원]

종이 한장으로 시작되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사실은 장례라고 부르기도 무색합니다. 말 그대로 ‘처리’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네요”
 
일부이기는 하지만 서울시와 비영리민간단체 ‘나눔과 나눔’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라고 말하기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가족하나 없는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에 국화꽃 한송이 올려주게 되었다.
 
지난 2015년 6월 10일 수요일 오전 10시, 서울시 무연고사망자 고(故) 박용석씨의 장례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있었다. 
 

 


나눔과 나눔의 한 관계자는 “비록 얼굴한번 마주하며 인사 한번 하지 못했지만 같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을 고(故) 박용석씨를 우리는 외롭게 보내드리고 싶지 않았다”며,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았을 고인을 위해 국화꽃 한송이 올려 보내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나눔 측에서는 공문에 쓰여 있는 고인의 주소지인 동자동에 혹시 지인이 있을까 수소문 했다. 다행이도 고인을 아는 분들이 있었고, 바쁜 일상이지만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서 마을주민들이 온 것이다. 더욱이 빈손으로 오시지 않고 어렵게 구한 고인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함께 가져왔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는 그야말로 연고자도 지인하나 없다. 그래서 빈소에 누군가 찾아오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지인이 조문을 오고, 게다가 영정사진까지 올릴 수 있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는 요즘 학생들이 흔히 하는 말로 “헐~대박”이다.
 
지인들이 말하시는 고인 박용석씨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정말 열심히 노동하며 살았다고 한다. 신세지기 싫어하고 자존심도 강하고 20년 넘게 쪽방에서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박 씨는 가족이 있었지만 마지막에 연락이 닿았던 가족 마저도 고인의 장례를 모실 수 없다며, 고인의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 대부분의 무연고 사망자 중 가족 또는 친척의 시신인수 포기로 무연고자가 되는 현실에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그래도 고(故)박용석씨는 다행이다. 마지막 가는 길 마을 지인들과 ‘나눔과 나눔’이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장례식에는 나눔과 나눔 회원, 홈리스행동 활동가, 동자동사랑방 회원, 배안용 목사님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장례를 마치며 고인을 마지막으로 운구차로 모시려 했지만, 무연고 사망자 운구차 일정때문에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못내 아쉬워 했다.

 

<시사상조신문 www.sisasangjo.co.kr >